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늦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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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y77
jacky77 2023-01-12 17:30:06
올해 1월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대책 중 하나로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시했다.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달 17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노동자를 만나 “건설현장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건설안전특별법 논의를 더 미룰 수 없다”고 했다. 건설사와 국민의힘은 모르쇠한다.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건설안전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를 보내왔다.<편집자>

지난달 22일 건설노동자 4만여명이 여의도에 결집해 목소리를 냈다. 국회를 향해 건설안전특별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그동안 건설노동자의 산재사망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진단은 많았지만, 실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은 속절없이 늦어지고만 있는 상황이다. 결국 당사자인 건설노동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건설안전특별법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진행된 공청회 이후 현재까지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에 취임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사를 통해 “후천적 건설현장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건설안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에 힘을 싣거나, 속도를 높인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사들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거론하며 ‘중복규제’ ‘이중·과잉처벌’의 우려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일까?

이런 건설사들의 반대 여론은 사실상 건설안전특별법의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중복규제’ ‘이중·과잉처벌’은 입법 반대의 명분일 뿐 진짜 문제가 아니다. 실제 이런 건설사들의 우려는 2020년 9월 국회에 최초 발의된 법안과 지난해 6월 재발의된 법안을 비교만 해봐도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 확인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후 재발의된 법안에서 경영책임자 책무·처벌 조항은 삭제됐다. 또 사망사고 발생시 과징금 추징 비율도 전체 매출액의 최대 5%에서 해당 사업 매출액의 최대 3%로 하향조정됐다. 행정규제의 과잉에 대한 우려도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 등의 중복 점검을 최소화해 합동점검을 실시할 수 있도록 수정됐다. 이렇듯 실내용만 조금 살펴보더라도 과잉이니, 중복이니 하는 건설사들의 주장이 과장임이 드러난다. 결국 건설안전특별법의 실질적인 효과는 감추고, ‘공포’만을 부추기는 것에 몰두해 있는 꼴이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건설안전특별법의 핵심 취지는 무엇일까? 건설안전특별법은 ‘발주-설계-감리-시공(원청·하청)-노동자’까지 전 과정을 아울러 예방을 우선하도록 강제하는 것에 있다. 모든 건설 주체에게 안전관리의무를 부과해 공사의 단계별로 그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은 건설공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발주자가 건설사업의 책임에 비례해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건설노동자가 일하게 되는 건설현장에 최적화된 기술과 재원을 조달할 근본적 책임은 발주자에게 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예방과 예방관리의 소홀로 나타난 결과에 대한 책임을 경영책임자나 사업주에게 귀속시키고 있는 것처럼,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책임도 마찬가지로 공급사슬의 맨 위에 있는 발주자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건설공사 발주자는 그 책임의 대상에서 정작 제외돼 있다. 직접 시공을 하지 않는 ‘주문자’에 다르지 않다는 이유로 빠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안전과 건강 문제와 직결된, 정작 건설노동자가 투입돼 일하게 되는 공사현장의 근본적인 노동조건은 전적으로 발주자의 의사결정에 달려 있다. 가령 빌딩을 짓는다고 하면, 어떻게 설계했는지, 무슨 자재를 사용할 것인지, 어떤 기술을 동원할 것인지, 해당 빌딩의 공사기간은 얼마인지, 투입되는 인력과 장비의 규모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것뿐 아니라 그에 합당한 기술과 능력을 갖춘 시공사를 선정해 일을 맡기는 것 등이 건설공사 발주자의 몫이다. 어디 그뿐인가,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제대로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고 있는지, 합당한 기술과 자재가 동원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문제는 없는지 등에 대해서도 감리자를 제대로 세워 이를 점검해야 할 몫도 발주자에게 있다. 그러나 정작 지금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몇 번의 클릭을 통해 주문을 하면 택배를 기다리면 되는 것처럼, 건설공사 발주처는 시공사를 선정한 이후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실정인 것이다. 최종 상품인 ‘건설물’을 통해 이익은 극대화하면서도, 건설공사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목소리다.

2년여 동안 건설노동자들이 외치고 있다. 출근한 동료들이 주검으로 돌아오는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해 한겨울 거리에 나선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영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마땅한 책임을 부가하라고 말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빈 구석으로 인해 방치된 건설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이다.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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